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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도수련기] 선무도와의 인연

작성자 사진: Borim Borim

선무도와의 인연 

- 하민중  

     

     

     

20년 전쯤에 처음 선무도를 배웠었다.

수능이 끝나고 할 일이 별로 없던 겨울이었고, 부모님의 권유로 성남에 있는 선무도 도장에 다니게 됐었다. 나야 뭐 어렸을 때 잠깐 교회에 다니다 말았지만 지금까지도 교회에 다니고 계신 부모님도 불교 전통 무술인 선무도를 배우셨었다. 그래서 뭔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종교라는 틀 안에 갇혀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처음 도장이란 곳에 가서 익숙하지 않은 운동복을 입고 처음 보는 동작들을 구석에서 조금씩 따라 했었다. 나는 태권도도 배워보지 않았던 터라 모든 동작들이 어색했고, 당시에는 눈을 감고 5분 이상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하면 할수록 선생님이 하시는 동작들을 점점 따라하게 되는 것이 재미있었고 하루에 몇 백번씩 발차기를 하면서 땀을 흘리는 것도 즐거웠다. 그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몸살감기가 좀 심하게 걸려서 선무도를 갈지 말지 고민하다가 일단 집을 나서서 도장에 갔었는데 그날따라 선생님이 발차기를 엄청 시키셨다. 수련 시간이 끝나고 나니 옷이 땀으로 다 젖어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내가 몸살감기에 걸렸었다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몸이 엄청 가벼웠다. 어린 나이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운동으로 땀을 쫙 빼고 나니까 몸이 좋아지는 것이 신기했다. 그 전에는 몸살감기라고 하면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만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발차기를 할 때 더 높이 차거나 다리를 더 잘 찢거나 하는 것에 집착했었다.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이 그렇게 하시는 게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집에 와서 다리를 찢고 TV를 보거나 다리를 찢은 상태로 다른 일을 했었다. 심지어 다리를 찢은 상태로 벽에 기대고 잤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났을 때쯤 도장에서 혼자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완벽한 180도로 다리가 찢어졌었다. 스스로도 놀랐었고 엄청 기분이 좋았었다. 물론 다리를 찢는 것 외에도 발차기나 다른 동작들도 열심히 따라 했었고 점점 몸이 유연해지고 조금씩 힘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고 재미있어했던 선무도인데 3월이 되어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여러 가지로 바쁜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선무도는 금방 잊혀져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TV를 보다가 영화에서 선무도를 보게 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라는 영화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빗대어 인간의 인생을 표현한 영화였고, 자신이 행한 업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계절의 변화와 같이 결국 반복되는 윤회사상을 얘기하는 영화였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깊은 산 속 호수 위 떠 있는 작은 암자는 신비로운 느낌을 주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에게는 영화 후반부 선무도를 수련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아는 동작들이 나와서 반갑기도 했고, 주인공이 선무도를 수련하면서 자신의 업보을 해방해 가는 느낌이었다. 선무도가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 방법으로 보였다.

     

그리고 친구들과 종로를 걸어가다가 우연히 선무도 간판을 발견했었다. 너무 반가웠었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느낌이기도 했다. 3개월 정도 짧은 기간 배운 선무도인데도 언젠가 다시 배울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것 같다. 왜 그 전에 서울에 선무도 도장이 있는지 찾아보지 못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종로까지 다닐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들쭉날쭉한 퇴근 시간 핑계를 대면서 바로 선무도 도장에 가겠다는 결정을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작년 2월 선무도 서울 본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2003년 3월부터 선무도를 못 다니게 됐었고 거의 딱 20년이 지난 2023년 2월이었다. 별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면서 뭔가 운동을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고, 이왕 운동을 할 거면 선무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서울 본원은 뭔가 차분하면서도 활기찬 분위기였다. 회원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셨는데도 엄청 유연하셨고 동작들도 다 외우고 계셔서 쉬는 시간에도 계속 수련을 하고 계셨다. 처음이라 약간은 어색했지만 그래도 다시 선무도를 배우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20년 전이랑은 많이 다른 몸 상태였고 180도까지 찢어지던 다리는 겨우 90도 정도만 벌려도 허벅지 아래쪽이 아팠다. 정확히 기억나는 동작도 없었다. 사실 3개월 배운 거면 기억이 안 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 지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있었고 천천히 꾸준히 해 나가시는 다른 회원님들을 보면서 나도 꾸준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부모님께 연락드려 다시 선무도를 배운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다시 선무도를 배운지가 이제 1년이 조금 넘어간다. 중간에 일이 너무 바빠서 못 나온 시간도 있었지만 예전과 다르게 급한 마음은 없다. 발차기를 높게 차거나 다리를 많이 찢는 것보다는 호흡에 더 집중을 해보려고 하고 있다. 물론 아직 잘되지 않는다. 호흡이 중요한 걸 알면서도 동작을 어떻게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호흡은 바로 잊혀져버린다. 명상을 할 때도 중간중간 집중하지 못하고 안 좋았던 일들이나 걱정들,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면 호흡에 집중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명상이 끝나있다. 명상이 끝나고 나면 기분이 좋다. 눈을 감고 있어서 그런지 잠깐 다른 세상에 갔다가 천천히 돌아오는 느낌이다. 

이제 1년이 조금 지나 1단 승단심사를 앞두고 있다.




승단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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