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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명상] 구마동 - 이병완

작성자 사진: Borim Borim

구마동



- 이병완



유년 이후 다시 찾은 구마동 숲은

더 울창하고 쓸쓸하지만

새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동이 트기 전

새들은 하나둘 둥지에서 일어나

서로 안부를 묻고 재잘대며

어둠을 쪼아 새벽을 연다


새들의 노래는 언제나 맑고 부드러워

눈 뜨는 아침이

깃털보다 가볍고 상쾌하다


해가 지면 새들은

다시 모여 하루를 수다로 마감하고

숲을 금세 깊은 어둠 속에 감춘다


그리고 별들은

새들이 깃든 가지를

밤새 초롱초롱 지켜보고 있다








이병완님(3단)이 시인으로 등단 하셨습니다.


문경에서 농사도 지으시고,

시도 지으셨네요. ^^*


축하드립니다. 🌷





가을밤



골짜기 언덕배기로 산 그림자 비치더니

어느새 어둠이 선술집 마당까지 찾아왔다


빈 마을 지키는 두어 명 고향 친구들 뒤로하고

취기에 돌아오는 숲길

가을이 깊어 풀벌레 소리도 들리는 듯 마는 듯


채전 밭에 오줌 누다 무심코 쳐다본 밤하늘엔

금싸라기 같은 별들만 마구 쏟아져 내린다







눈이 내리면 숲으로 간다



눈 내리는 날은 숲으로 가

시린 손 모으고 가만히 서서 눈을 맞는다


풀과 나무 흙과 돌

굴속의 들짐승과 가지 위의 새들

모두 미동도 없이 눈을 맞는다


눈이 쌓일수록

낮은 곳은 높아지고

높은 곳은 낮아지고

삼라만상의 모든 색채들은 평등해진다


눈 내리는 숲속에 서서

가만히 눈을 맞으면

눈은 아픈 마음을 덮어 준다


어깨 펴고 돌아오는 흰 눈길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가을비


이제 때가 되었다고

내려놓을 것들은 서둘러 내려놓으라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있다면

붉게 한번 타오르라고


이른 봄부터 꿈꾸었던 씨앗들이

더러는 알곡으로 더러는 쭉정이가 되었지만


다 내려놓고 긴 기다림을 다시 준비하라고

새벽부터 가을비 재촉한다







어머니는 처녀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오롯이 처녀로

하늘나라에 돌아가셨다


치매를 앓으신 어머니는

사랑을 주신 크기만큼 순서대로

기억들을 지워나가셨다


발걸음 뜸한

서울 사는 셋째 아들은 진즉에 잊으셨고

병수발 해주시던 아버님도 끝내 기억에서 지우셨다


꽃다운 열여덟에 시집와서

시부모 모시고 모시 적삼 거친 밭일

칠 남매 오냐 오냐 키우신 그 숱한 고생들

다 부질없다 하시고


복사꽃 언덕 위 외갓집 가는 길에

나물 캐던 봄 처녀로 세상을 떠나셨다


잊힌 순서만큼 죄송한 마음 더 커질 줄은,

잔 기울여 후회한들

이제 무슨 소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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